떠도는 삶의 이력
아버지는 농사를 짓고 싶어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남의 집 농토를 부쳐 먹거나 품팔이 일을 해 가지고는 예나 지금이나
시골에 서는 가족들 굶겨 죽이기 딱 알맞다.
그래서 아버지는 식구들을 데리고 시골을 떠나 도시로 나갔다.
막노동도 하고 나무 장사도 하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다가 다시 시골로 돌아가 농사를 짓기도 하고,
농사에 실패하면 다시 도시로 흘러가는 악순환을 되풀이했다.
우리 형제는 모두 다섯 명이었다. 나는 이남삼녀 중 차남이다.
벼랑 끝에 몰린 가난 속에서 다섯 명의 아이들이 먹고 살기에도 바쁘고
힘이 드는데 공부라는 호강스러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 다섯 형제들을 대표하여, 아니 우리 집안을 대표하여 내가
유일하게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읽을 줄 알고, 쓸 줄 알며, 남에게 내 주장을 글로 발표할 줄
알게 된 것도 온전히 나를 제외한 다른 형제들,
그 중에서도 특히 작은누님과 여동생이 스스로를 희생하여 뒷바라지
해준 덕택이었다.
검사로 지낸 십일 년간 내 청춘을 바쳐 이 사회의 부정과 비리와 맞서
싸우며 하루라도 편하게 지낸 날이 없었다.
밤을 꼬박 세우며 고위 권력자의 비리를 추적하다가 이를 밝혀 냈을 때
느꼈던 환희도 부당한 압력에 단호히 맞서 내 전부를 내던져 이를 이겨
냈을 때 쾌감도 아스라한 기억의 언덕으로 넘어가버렸다.
나는 이제 그토록 자랑스럽게 집착하던 이 사회 정의의 수호자로서의
검사는 아닌 것이다.
이 책은 폭로를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니다.
검사로 재직할 당시 증거만 찾으면 상대가 누구더라도 주저하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검사로서 간직해야 할 비밀은 없다.
정당(正當)하게 법(法)집행(執行)을 하고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옳은 일을 했다고 격려를 받고도 세월이 지나자 일부 세력의 모함으로
총독의 앞잡이,배신자 유다로 오인당해야 하는 억울함이 나에게는 있다.
변신을 앞둔 시점에서 내가 살아온 지난 사십 년 세월을 뒤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그 진지한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하여 집필하게 되었다. - 홍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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