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복래부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청담 일취월장 2011. 1. 23. 17:03

 

 

 

신라시대(지금의 창원시 백월산 동남쪽 선수촌마을)에 노힐부득(努肹夫得)과 달달박박(怛怛朴朴)이란 두 청년이 살았는데,  이들은 모두 풍채와 골격(骨格)이 범상치 않았고, 속세를 떠난 마음이 있어 서로 좋은 친구였다.  

 

20세가 되자  마을 동북쪽 고개 밖에 있는  법적방(法積房)에 가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얼마 되지 않아, 서남쪽 치산촌(雉山村) 법종곡(法宗谷) 승도촌(僧道村)에 옛 절이 있는데, 서진(栖眞)할 만하다는 말을 듣고, 함께 가서 대불전(大佛田)·소불전(小佛田)의 두 마을에 각각살았다.  

 

노힐부득(努肹夫得)은  회진암(懷眞巖)에 살았고,  달달박박(怛怛朴朴)은  유리광사(瑠璃光寺)에살았다. 

 

이들은 모두 처자(妻子)를 데리고 와서 살면서 생업(生業)을 하면서 서로 왕래하며 정신을 수양하고 편안히 마을을 닦아 속세를 떠날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몸과 세상의 무상(無常)함을 느껴 기름진 밭과 풍년 든 해는 참으로 좋은 것이지만,  의식(衣食)이 마음대로 생기고 자연히 배부르고 따뜻함을 얻는 것만 못하다.  

 

또 부녀(婦女)와 집이 참으로 좋으나, 연지화장(蓮池花藏)에서 여러 부처가 앵무새나 공작새와 함께 놀면서 서로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더구나 불도(佛道)를 배우면 응당 부처가 되고, 참된 것을 닦으면 반드시 참된 것을 얻는 데에 있어서랴.  지금 우리들은 이미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으니 마땅히 몸에 얽매어 있는 것을 벗어 버리고 무상(無上)의 도(道)를 이루어야 할 것인데, 어찌 이 속세(俗世)에 파묻혀 세속 무리들과 같이 지내서야 되겠는가.

  

이들은 드디어 인간 세상을 떠나서 깊은 골짜기에 숨으려 했다. 어느 날 밤 꿈에 백호(白毫)의 빛이 서쪽에서 오더니 빛 속에서 금빛 팔이 내려와서 두 사람의 이마를 쓰다듬어 주었다.  

 

꿈에서 깨어 그 얘기를 하니 두 사람의 말이 똑같으므로 이들은 모두 한참동안 감탄하다가 드디어 백월산(白月山) 무등곡(無等谷; 지금의 남수동南藪洞)으로 들어갔다.

 

박박(朴朴)은 북쪽 고개의 사자암(獅子巖)을 차지하여 판잣집 8척 방을 만들고 살았으므로 판방(板房)이라 하고, 부득(夫得)은 동쪽 고개의 무더기 돌 아래 물이 있는 곳을 찾아 방을 만들어 살았으므로 뇌방(磊房)이라고 했다.

 

이들은 각각 암자에 살면서 부득(夫得)은 미륵불(彌勒佛)을 성심껏 구했고, 박박(朴朴)은 미타불(彌陀佛)을 경례하고 염송(念誦)했다. 3년이 못되어 경룡(景龍) 3년 기유(己酉; 709)  4월 8일은 성덕왕(聖德王) 즉위 8년이다. 

 

해는 저물어 가는데 나이 20이 가깝고 얼굴이 매우 아름다운 낭자(娘子)가 난초(蘭草)의 향기와 사향 냄새를 풍기면서 갑자기 북암(北庵 ; 향전鄕傳에는 남암南庵이라 했다)에  와서 자고 가기를 청하면서 글을 지어 바친다. 

 

行遲日落千山暮     路隔城遙絶四隣     느린 걸음 해는 져 산은 어둡고 

행지일락천산모     로격성요절사린     막힌 길에 홀로 선 몸 마을은 멀어

 

 

今日欲投庵下宿       慈悲和尙莫生嗔         오늘밤은 이 암자에서 쉬고자 하니

금일욕투암하숙    자비화상막생진      자비로운 스님께선 꾸짖지 마오.

 

  

박박(朴朴)은 절은 깨끗해야 하는 것이니 그대가 가까이 올 곳이 아니오. 어서 다른 데로 가고 여기에서 지체하지 마시오. 하고 문을 닫고 들어갔다.

 

낭자(娘子)는 북암北庵)으로 돌아가서 또 전과 같이 청하니 부득(夫得)은 그대는 이 밤중에 어디서 왔는가  낭자가 맑기가 태허(太虛)와 같은데 어찌 오고 가는 것이 있겠습니까.   다만 어진 선배의 바라는 뜻이 깊고 덕행(德行)이 높고 굳다는  말을 듣고 장차 도와서 보리(菩提)를 이루고자 해서일 뿐입니다."  그리고는 게(偈) 하나를 주었다. 

 

日暮千山路   行行絶四隣    해 저물고 첩첩한 길,  가도 가도 인가는 없네,

일모천산로   행행절사린

 

竹松陰轉邃   溪洞響猶新   소나무 대나무 그늘은 더욱 깊고,  골짜기 시냇물 소리

죽송음전수   계동향유신   더욱  새로워라.

 

乞宿非迷路   尊師欲指津   자고 가기를 청함은 길 잃은 탓 아니고, 높으신 스님을

걸숙비미로   존사욕지진   인도하려 함인 것.

 

願惟從我請   且莫問何人   원컨대, 나의 청 들어만 주시고,  길손이 누구냐고

원유종아청   차막문하인   묻지는 마소서

 

부득(夫得)은 이 말을 듣고 몹시 놀라면서 이곳은 여자와 함께 있을 곳이 아니나, 중생(衆生)을 따르는 것도 역시 보살행(菩薩行)의 하나일 것이오.  더구나 깊은 산골짜기에 날이 어두웠으니 어찌 소홀히 대접할 수 있겠소. 하며 그를 맞아 읍(揖)하고 암자 안에 있게 했다.  

 

밤이 되자 부득은 마음을 맑게 하고 지조를 닦아 희미한 등불이 비치는 벽 밑에서 고요히 염불했다

 

밤이 새려 할 때 낭자는 부득(夫得)을 부르며 내가 불행히 마침 산고(産故)가 있으니 원컨대 스님께서는 짚자리를 준비해 주십시오.  부득(夫得)이 불쌍히 여겨 거절하지 못하고 은은히 촛불을 비치니 낭자는 이미 해산을 끝내고 또 다시 목욕하기를 청한다.

  

부득(夫得)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마음속에 얽혔으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그보다 더해서 마지못하여 또 목욕통을 준비해서 낭자를 통 안에 앉히고  물을 데워 목욕을 시키니 이미 통속 물에서 향기가 강하게 풍기면서 금액(金液)으로 변한다.  

 

부득(夫得)이 크게 놀라자 낭자는 스님께서도 이 물에 목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부득(夫得)이 마지못하여 그 말에 좇았더니  갑자기 정신이 상쾌해지는 것을  깨닫고,  살결이 금빛으로 되고, 그 옆을 보니 졸지에 연대(蓮帶) 하나가 생겼다.  

 

낭자가 부득에게 앉기를 권하면서  나는 관음보살(觀音菩薩)인데 여기 와서 대사를 도와 대보리(大菩提)를 이루도록 한 것이오. 말을 마치더니 보이지 않았다.   

 

한편 박박(朴朴)이 생각하기를, 부득(夫得)이 오늘 밤에 반드시 계(戒)를 더럽혔을 것이니 비웃어 주리라하고 가서 보니 부득(夫得)은 연화대(蓮花臺)에 앉아 미륵존상(彌勒尊像)이 되어 광명(光明)을 내뿜는데 그 몸은 금빛으로 변해 있었다.  

 

박박(朴朴)은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말한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습니까. 하니 부득이 그 까닭을 자세히 말해 주니

 

박박(朴朴)은 탄식해 말기를 나는 마음속에 가린 것이 있어서, 다행히 부처님을 만났으나 도리어 대우하지 못했으니, 큰 덕(德)이 있고 지극히 어진 그대가 나보다 먼저 이루었으니. 부디 옛날의 교분(交分)을 잊지 마시고 일을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하니 부득이 통 속에 금액이 남았으니 목욕함이 좋겠습니다. 하니 박박이 목욕을 하여 부득과 같이 무량수(無量壽)를 이루니 두 부처가 서로 엄연히 대해 있었다.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다투어 와서 우러러보고 감탄하기를,

"참으로 드문 일이로다."했다. 

 

두 부처는 그들에게 불법(佛法)의 요지(要旨)를 설명하고 나서, 온몸으로 구름을 타고 가 버렸다고 한다.

 

 (삼국유사 권삼 남백월이성 노힐부득 달달박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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